본문/내용
1. <龍飛御天歌>의 제작 배경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을 뿐 아니라, 그 실용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용비어천가>를 찬정하게 하였다. 1442년(세종24) 봄에 경상∙전라 두 도의 관찰사에게 전지를 내려, 태조가 운봉에서 왜구와 싸우던 사적을 탐문하여 보고하라 하여 <용비어천가>편찬 작업을 착수하였다. 그리하여 세종 28년 훈민정음이 반포되자 『태종실록』을 상고하여 한역시를 삽입하였고, 동29년 2월에는 사실과 엇귀에 대한 주해를 붙여 10권을 만들어 올렸다. 다시 동년 5월에는 <용비어천가>를 음악에 맞추어 치화평 ∙ 취풍향 ∙ 봉래의 ∙ 여민락 등의 악보를 만들어 공사 연향에 쓰게 하였다.
그 무렵 조선왕조는 신흥 국가로서 밖으로는 사대교린의 정책을 확립하고 있었고, 안으로는 새로운 질서와 지배 체제를 다지는 시기였다. 세종대왕은 조선왕조의 창업에 대하여 역성혁명의 당위성을 내세우기 위하여 육조의 행적을 중국의 고대 주나라의 개국에 대비시켜 천명의 소치임을 강조하려 하였다. 그런 만큼 <龍飛御天歌>의 제작 의도는 개인적인 데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출발한 것이다.
2. <용비어천가>의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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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엽, 『李朝時代의 歌謠硏究』, 大洋出版社, 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