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넷째, 신라 불교의 초기 전파는 선산지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차차 왕경으로까지 전파된 듯 하고, 소지왕대(479~500)에는 왕실에도 전해진 것 같다. 예전에 보수성이 있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이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내전은 곧 천주사로 월성과 안압지 중간에 있던 궁중의 내불당으로 추정된다. 사금갑 설화에 따르면 내전의 분수승이 궁주와 몰래 정을 통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당한 사건이 소지왕 10년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궁중에까지 수용되어 있었던 불교가 크게 박해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다섯째, 법흥왕 14년에 불교 공인은 당시 전래·수용 되있던 불교를 토대로하여 가능한 것이었다. 법흥왕에게 흥법의 뜻이 있었고 순교를 자처하고 나섰던 이차돈의 신앙심 또한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신라 불교의 수용과 공인을 논함에 있어 초전자 아도의 공을 잊을 수 없다.
◎ 신라 초기 불교와 귀족세력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연대는 지금껏 흔히 믿어지고 있는 것과 같이 법흥왕 14년(527)이 아니라, 법흥왕 21년(534)이나 22년(535)이어야 한다고 한다. 그 근거는 처음 불교의 수용 문제가 흥륜사의 창건으로부터 발단하…
참고문헌
김상현, 신라의 사상과 문화 , 일조각 , 1999
이기백 , 신라 사상사 연구 , 일조각 , 1986
김영태, 삼국시대 불교신앙연구 , 불광문학총서 , 1990
국사편찬위원회(김상헌) , 국사관논총(85권) , 1999
경서원 , 신라불교의 이념과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