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시의 반어와 역설
반어(反語) irony는 그리스 희극의 한 주인공인 에리론 Eiron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에리론은 자기 과시적인 인물인 알라존 Alazon과 반대로 ‘자신을 은폐하는 자’이다. 즉, 의도적으로 자신의 실상을 숨기고 보다 어리석은 체하는 것이다. 이 에이론이 종말에 가서는 알라존을 이긴다. 이 에이론처럼 실상 또는 진실을 안으로 숨기는 수사법이 곧 반어이다. 반어의 어원인 에이로네이아 eironeia도 ‘은폐’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반어는 에이론처럼, 의도적으로 실상 또는 진실을 숨기고 표면적으로는 다르게 말하는 수사법이다. 흔히, 잘못한 사람에게 반대로 ‘잘했다’고 하는 것과 같은 조롱과 야유, 풍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역설(逆說) paradox은 para(넘어서)와 dox(진술)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모순되는 것 같지만, 그 표면적인 진술 너머에서 진실을 드러내고 있는 수사법이다. 이와 같이, 표현된 것과 은폐하고 있는 표현의 구조가 반어와 유사하므로, 역설을 반어의 한 종류로 보기도 한다.
2. 「님의 침묵」에 나타나는 역설의 언어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