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640年에서 1660年 사이에 발생한 英國革命은 불과 1세대 전만 해도 宗敎的 自由와 立憲的 自由의 수호를 위한 혁명이라고 해석되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소위 wing的 해석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해석은 주로 國家政治에만 관심을 집중시킨 吳主煥, “英國革命史 硏究의 實相”, [慶北史學], 第五輯, 1982, pp.24-35.
것으로 영국혁명과 資本主義의 발달과의 상관관계 등과 같은 혁명의 경제적 측면을 소홀히 취급하는 한계성을 노출시켜온 것이 사실이었다.
R. H. Tawney는 [젠트리의 대두] (The Rise of the Gentry, 1558-1640) 라는 논문을 통해서 신흥 Gentry는 토지 소유자이며 지방의 지주와 도시의 법률가 및 상인들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자본주의적이며 합리적인 지방경영을 통해서 사회경제적으로 그 지위를 상승시킨 결과 1640년대의 혁명이 이들의 社會經濟的 發展의 所産인 동시에 그것을 완성시키고 政治體制를 이에 적응시키려는 혁명이었음을 주장했다. 문석홍, “17世紀 英國革命의 解釋에 관한 몇가지 問題”, [西洋近代史硏究], (서울: 一潮閣, 1981), pp. 50-68.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곧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그 결과 퓨리타니즘(Puritanism)…
참고문헌
1) 문석홍, [西洋近代史 硏究], 서울: 일조각, 1981.
2) 羅鍾一, [英國近代史 硏究], 서울: 서울대출판부, 1979.
3) 羅鍾一, “英國튜더王政의 農業政策과 職人法에 대한 論議”, 서울, [歷史學報] 第四十六輯, 1970.
4) 吳主煥, “英國革命史硏究의 實相”, [慶北史學],第五輯, 1982.
5) 文永相, “淸敎徒 革命의 社會經濟的 背景의 分析”, [東亞論叢], 第七輯, 1971.
6) 崔京淑, “Tudor王政의 商工業政策”, [淑大史論], 제11, 12合輯, 1976.
7) W.J. Ashley, [英國經濟史], 裵福石 譯, 서울: 法文社, 1960.
8) 申翰雨, “Enclosure運動의 硏究”, [京畿大論文集], 第五輯, 1977.
9) 金民濟, “Tudor時代 流浪民 發生原因에 대한 硏究”, [陸士論文集], 第十七輯,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