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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교3학년 여름. 만해축전 청소년 백일장을 하기 위해 백담사로 가는 도중,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길이 좁아서 개인 승용차로는 들어갈 수 없다는 관계자의 말에 충청남도에서부터 설악산 백담사까지 거진 9시간을 달려온 나는 맥이 탁 풀렸다. 겨우 산으로 들어가는 차에 올라, 백담사로 들어가는 길은 너무 험하기만 했다. 핸들을 살짝 돌리기만 해도 절벽아래도 뚝 떨어져 버릴 것만 같은 기분에 나도 모르게 창문에서 멀리 떨어졌다.
10여분 정도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백담사에 도착했을 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쳐 있었다. 행사시간이 지난 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나는 백담사의 절경에 깜짝 놀라 탄성을 질렀다. 내가 살던 서쪽, 충청남도와는 다른, 동쪽 강원도 태백산맥의 높고 거친 산맥의 모습도 충격이었지만, 전두환前대통령이 은둔시절에 만들었다는 다리 밑으로 흐르는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숲의 푸름. 종전에 백일장 관계자들에게 들었던 섭섭한 마음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듯 했다.
밤구름이 잘 익은 달을 낳고
달이 다시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 후
숲에서는…… 툭…… 탁…… 타닥……
상수리나무가 이따금 무슨 생각이라도 난 듯
제 열매를 던지고 있다
열매가 저절로 터지기 위해
나무는 얼마나 입술을 둥글게 오므렸을까
검은 숲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말소리,
나는 그제야 알게도 된다
열매는 번식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무가 말을 하고 싶은 때를 위해 지어졌다는 것을
……타다닥…… 따악…… 톡…… 타르르……
무언가 짧게 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웃음소리 같기도 하고 박수소리 같기도 한
그 소리들은 무슨 냄새처럼 나를 숲으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어둠으로 꽉 찬 가을숲에서
밤새 제 열매를 던지고 있는 그의 얼굴을
끝내 보지 않아도 좋으리
그가 던진 둥근 말 몇 개가
걸어가던 내 복숭아뼈쯤에…… 탁…… 굴러와 박혔으니
- 나희덕의 [저 숲에 누가 있다]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