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설명
1894년 농민전쟁에 대해 다시 정리해보고, 전북지역 답사 후기가 있습니다.
한국근대사개설과제완성본
본문/내용
1860년대 초는 조선사회 내적으로 조선왕조의 통치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었다. 閥閱家門을 중심으로한 국가의 권력독점으로 勢道政權은 性理學的 支配秩序를 옹호하면서 일체의 사회적 변화에 대해 사상적 정치적 통제를 가하고 있었고 한편으로 賣官賣職을 통해 정치적 혼란과 부패정치를 일삼고 있었다. 봉건적 부세수취제도인 三政에서는 조선후기 이래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을 반영하면서 租稅의 金納化, 地稅化가 이루어졌는데, 실제 조세의 부과와 징수는 아무런 합리적인 근거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방사회의 세력관계에 따라 편중된 부세수탈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관료층, 이서배, 양반층이 부세수취의 감면이나 중간이득을 취하는 등 혜택을 누리는 반면 일반 농민층, 특히 빈농층들은 자신의 경제적 처지와 상관없이 가혹한 수탈을 당하는 입장이 되었다. 부세제도의 비합리성과 문란현상은 과도한 농민수탈을 증폭시켜 점차 봉건국가대 일반농민과의 적대적 대립을 형성시켰을 뿐만 아니라 농촌사회에서 兩班地主 對 富農 小 貧農 등 沒落農民과의 계급적 대립관계를 가중시키고 있었다.
농민들은 지방의 자치모임인 ‘鄕會’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지방관이나 도의 감사에게 ‘訴狀’을 제출하여 여러 차례 시정을 요구하고 있었으나 실제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民亂의 전개방식은 먼저 通文을 돌리고 鄕會를 개최하여 지역의 문제를 논의하였으며 呈訴를 통해 요구사항을 제시한 후, 관철되지 않자 관청을 점령하여 吏胥輩들을 몰아내는 등 3일내지 6일 정도에 걸쳐 고을의 邑政을 장악하고 改革 要求을 제시하고 이후 자연 해산하는 형태를 지녔다. 民亂은 기존 鄕村末端의 權力機…
농민들은 지방의 자치모임인 ‘鄕會’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지방관이나 도의 감사에게 ‘訴狀’을 제출하여 여러 차례 시정을 요구하고 있었으나 실제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民亂의 전개방식은 먼저…
참고문헌
1. 한국역사연구회, 「1894년 농민전쟁연구 5」, 역사비평사, 1997
2. 원종규, 「갑오농민전쟁100돌기념논문집」, 집문당,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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