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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에서 제국주의 일본이 무조건으로 항복하기까지, 일본근대문학에는 기독교문학이라고 할만한 작품이 많지 않았다. 이것은 기독교에 관심을 가진 문인이 전혀 없었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금방 생각나는 몇 사람의 이름만 손꼽아도 토쿠토미 로까(1868-1927)를 비롯하여 나가용요시로오(長與美郞,1888-1961), 아쿠타가와 류오노스께(1892-1927)와 그의 제자인 호르 타쯔오(1904-1953)등의 작가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기독교에 관심들을 가졌었다. 아니 그들은 기독교에 대하여 관심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더러는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들 중 개화기에 우리 나라에 소개되어 화제를 모은 일본의 명치소설 <불여귀(不如墳)>의 작가 토쿠토미는 어려서부터 개신교의 영향을 받아가며 자랐다. 또한 종형들이 창설에 관여한, 지금도 쿄토에 있는 기독교계통의 동지사 대학을 졸업했으며 그후에 세례를 받고 한때는 선교활동에 나서기도 하였다. 이 동지사 대학은 시인 윤동주가 유학했던 곳이기도 하다. 토쿠토미는 특히 러일전쟁 중에 세계적인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글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06년에 성지 팔레스티나를 순례하고 나서 그 길로 러시아까지 톨스토이를 찾아가 만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그 후에 톨스토이적인 인도주의 사상이 짙은 글들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러나 평생 시나 소설을 통하여 기독교 문학을 창작하는 일은 없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기독교와 기독교인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쓴 자가는 아마 나가요 요시로오였을 것이다. 그리고 <청동(靑銅)의 기독(基督)>이라고 제목한 이 소설이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 만큼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온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