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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정재원은 남인파의 양반으로서 일찍부터 벼슬하여 지방수령을 역임하였으나,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참사를 계기로 관직을 물러나, 향리에 돌아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4세 때(1776) 아버지가 호조좌낭(戶曹左朗)으로 다시 기용됨에 따라 서울로 올라온 다산은, 16세때에 이미 실학자 이익의 유고를 읽고 실학에 심취하게 되었으며, 이익의 제자인 채제공,권철신 등과 교유하고, 또한 박지원, 박제가 등과도 접촉하여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