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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 삼포왜란과 일본인식
『海東諸國記』가 편찬된 成宗 2년(1471)이후부터 宣祖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기까지, 조선의 대일통교체제는 서서이 모순을 보이기 시작하여 드디어 三浦倭亂(1510), 蛇梁鎭倭変(1544), 乙卯倭変(1555) 등이 일어났고,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몇 번의 조약 개정이 있었다. 이 시기에 조선은, 일본에 파견하는 통신사의 안전이 불안하다는 이유와, 室町幕府의 장군이 외교실권자로서 권능이 없으며, 대마도를 통한 무역통제로 어느 정도 왜구의 불안이 없어졌으므로 幕府와의 통교를 거의 단절하였다.
이러한 때 三浦倭亂은 대일통교 운영상에 획기적이며 의미있는 사건이었고, 이후 일본에 대한 관심이 더욱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여기서는 三浦倭亂의 배경과 성격, 그리고 조정의 대응을 통하여『海東諸國記』이후 조선의 대일본인식을 알아본다.
1. 삼포왜란
燕山君 제위 기간에 국정이 문란하여 조선의 대일통교체제는 초기의 질서가 많이 흐트러졌다.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三浦에 와서 체류하고 있는 대마도 사람들이었다.『海東諸國記』의 표현을 보면, 이 대마도 사람들은 교역과 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