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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신라가 국제무대에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가 늦었던 것은, 주변 소국(小國) 통합을 포함한 지배체제 정비가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4세기 후반 마립간시기에 들면 김씨의 독점적 왕위 계승이 확립되고 주변 소국의 통합도 큰 진전을 보았다. 신라의 위두(衛頭)가 전진(前秦)에 갔을 때, “경(卿)이 말하는 해동의 상황이 예전과 같지 않으니 왜 그런가” 하는 부견(符堅)의 물음에 “중국에서 시대가 변혁되고 명호(名號)가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라고 답한 데서 그러한 자신감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5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신라는 고구려의 강한 영향력 아래 있었다. 400년에는 고구려로부터 대규모 군사원조를 받은 뒤 내물 마립간이 직접 조공을 바치기도 했고, 신라 영토 내에 고구려군이 주둔하는 상태도 오래 지속되었다. 신라는 고구려에 인질을 보냈고, 고구려가 신라의 왕위 계승과정에 개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국을 중심으로 한 독자적 천하관을 지니고 있던 고구려의 입장에서 보면 신라는 ‘동이(東夷)’였다.
신라가 고구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5세기 중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