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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이 제작됨으로써 조선왕조는 전대에 없었던 시가 형태를 창조해 냈었으니 그것이 곧 악장이라는 시형이었다. 이 시형이 한번 완성되고 널리 퍼지게 되자 점잖고 유식한 많은 선비들은 거기서 곧 자기네의 기호에 알맞는 새로운 문학 형태를 발견하고 즐겨 이 시형을 빌어 많은 악장들을 지어 혹은 군왕에게도 바치고 혹은 가인을 시켜 부르게도 하였다. 이제 이 악장 시형의 형성 과정을 좀더 자세히 고찰하여 보면, 조선왕조가 건국되자 왕도의 이전과 신흥 국가의 왕업을 찬양하기 위한 송가의 제작이 요구되었다.
이 송가는 궁중의식이나 종묘 제전에서 연주되는 음악의 곡률에 맞추어 노래로 불려졌던 것이다. 그 후 훈민정음의 창제로 말미암아 국문자의 실용이 요청됨에 따라 그 첫 사업으로 조선 왕조의 조상을 신성화하고 왕업의 영원무궁을 기원하며 군왕의 덕화를 찬송하기 위하여 용비어천가가 지어졌고, 이어서 불타의 은총을 찬송하기 위하여 석가모니의 일대를 노래로 엮은 월인천강지곡이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일련의 시가들은 전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형으로서 그것을 악장이라는 이름으로 국문학 시가의 한 장르로 간주하고 있다.
악장은 교술시로 조선왕조의 창업과 더불어 등장했다. 조선 전기에는 경기체가·가사와 더불어 교술시로서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면서 서로 경쟁하기도 하였으나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악장과 경기체가는 자취를 감추고 만다. 제왕의 위업을 찬양하는 노래인 악장은 그전부터 있었으나, 조선왕조의 건국과 함께 한시는 물론 우리말로 된 것까지 힘껏 지어냈다.
악장은 나라에서 거행하는 공식적인 행사에 소용되는 노래를 말한다. 목적으로 하는 바나 나타내는 내용은 아주 뚜렷하지만, 독자적인 형식을 형성하는 데 이르지는 못했으며, 자연스럽게 지속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