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신비로 둘러싸인 요정들의 샘물을 분석하는 학자를 보낸 파리를 불지르고 있었다는 멜류진. 그녀는 순진한 사람들이 요정들을 사랑하고, 숭배하며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그들의 구역을 지켜주었으며 그들 또한 프랑스를 지켰던 과거를 회상했고, 서민들의 믿음이 사라져갔기 때문에 요정의 샘과 힘, 아름다움을 잃고 비참한 삶을 이어가다 죽음을 맞이한 동료들을 떠올리며 슬퍼했으며 요정을 믿지 않게 된 농부들은 조국도 믿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멜류진은 사람들의 순수함과 상상력, 믿음이 사라진 세상을 비판하고 있었다. 삭막해진 사회는 삭막한 민심을 불러오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지나친 개인주의와 과학지상주의에 사라져가는 공동체 주의를 예로 들 수 있다. 분명 현대사회는 상상력이나 공상보다는 분석적이고 계산적인 능력을 더 중요시 하는지 모르겠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위해 멜류진의 증언처럼 어른들이 아이들의 손에 요정의 이야기대신 권태덩어리의 과학책을 쥐어주는 것도 사실이다. 어른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 속 아이들의 위치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한 관심이고 그것은 필요하고 중요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멜류진의 슬픈 절규를 듣고 난 지금 나는 말하고 싶다. 경쟁사회 속에서도 요정을 볼 줄 아는 눈을 키워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냐고. 요정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책한권을 들려줌으로써 우리 사회의 미래가 얼마나 아름다워질 것인가를 결정하는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믿는다. 멜류진이 프랑스의 마지막 요정이었음을.
가족과의 짧은 일박여행을 떠올려 본다. 강원도 산줄기를 굽이굽이 달리는 차창 밖으로 잠시 중단된 듯 보이는 공사현장이 눈에 띄었다. 몇 일 새 하얗게 내린 눈으로 덮인 산은 어느 은사가 살고 있을 법도 한 절경이었지만 붉게 들쳐진 땅덩어리 위에 썰렁하게 놓여있는 크레인이 날 슬프게 만들었다. 내가 요정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이럴 때 만큼은 멜류진의 기분을 느껴보며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