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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지독한 가난을 경험했던 나로서는 나이 서른이 되기까지도 오로지 가장 성공하는 것의 척도로 돈과 사회적 명예의 빠른 선점을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혹은 대학으로 각개 약진한 내 마을 친구들의 면면을 들여다보자. 지금도 만남을 계속하고 있는 서른 한 살, 두 살, 셋 까지를 살고 있는 고교 동창들이다.
고교를 졸업했을 때 우리들에게 있어 삶의 좌표는 대학에 붙은 놈이었고, 나머지 놈들은 심한 좌절을 맛보았노라 훗날 고백하기도 했다. 군대 갔다 오고 사회 생활들을 시작하면서 조건 좋은 직장과 보수, 혹은 누가 예쁘고 잘난 여자를 사귀고 있나 따위가 종종 화두가 되었고, 제일먼저 삐삐를 구입했던 놈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으며 가장 먼저 한 놈이 차를 사자 너도 나도 차를 샀고 한 놈이 핸드폰을 들고 나타나자 이듬해 전부 구입완비 되었으며 지금은 누가 집을 샀고 누가 아이를 몇 가지고 있는가 따위가 평안한 삶의 기준점이 되어 있다. 물론, 위의 기준들은 지금도 불변하는 우리들은 보통 서민들의 전형적인 삶의 방식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나 역시도 서른이 될 때까지 하루 대여섯 시간의 조각잠을 감수하며 <안정>된 미래를 위해 내 몸을 혹사해 왔으니까.
그러나 나이 서른이 되는 순간, 나는 모든 것이 재미없어져 버렸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들이 함께 작용했지만 사는 게 재미없어져 버렸고 내가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자는 생각으로 뒤늦게 다시 다른 공부의 길을 선택했다. 처음엔 출가를 생각했으나 차마 그럴 용기는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 서른, 다른 길을 선택함에 나는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경제적인 활동을 포기함으로 인한, 삶의 질로 대변되는 보편 고급스런 삶, 을 포기 해야 했고 그때까지 일구었던 경제적 기반도 잃어야 했으며 오가며 마음에 와닿는 내 전생을 만나도 감히 손 내밀어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지우는 일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이렇듯 많은 것을 잃거나 포기해야 함에 또한 당황스러운 요즘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