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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말에 본격화한 농민항쟁은 가까이는 12세기 초 개경주변의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민의 유망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민의 유망현상은 이 무렵 활발한 대외교역을 통하여 부를 축적한 봉건귀족층의 민에 대한 토지 탈점, 부의 분배를 둘러싼 귀족층간의 정치적 대립, 여진과의 전쟁을 위한 민에 대한 수취의 강화현상과 맞물려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약 200여 년간 지속되어왔던 고려 전기 사회의 구조는 12세기 이후 점차 자체 모순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12세기 후반기에 시작된 농민항쟁은 비록 전개양상이나 규모, 지향성, 참가 층의 구성 등에 다양한 편차를 안고 있으나, 그것은 당대 사회구조가 안고 있는 자체 모순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고려사회가 안고 있었던 구조적 모순이 결국 그런 다양한 모습의 항쟁을 낳게 하였다. 당시 농민항쟁의 원인이나 배경을 총체적인 차원에서 접근, 고찰하는 일은 고려 전기 사회구조의 특성과 함께 그러한 사회구조가 변동되는 모습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러한 방법으로 12, 13세기 농민항쟁의 배경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농민항쟁의 배경과 원인】
1. 농민항쟁의 배경
1)민의 유망현상
고려시대 농민항쟁은 무인정권의 성립(1170년) 직후인 12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지만, 이미 12세기초에 접어들면서 여러 가지의 사회변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한 사회변화는 크게는 고려전기 사회를 변동시키는 일이었지만, 한편으로 한국사의 어느 시기에도 찾아볼 수 없는 약 1세기간에 걸친 대규모 농민항쟁의 배경이 되었다.
12세기초인 예종대(1105~22년)에는 민이 크게 유망(流亡)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유망은 민이 국가에 대한 조세와 역역징발 등의 공역(公役)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일종의 농민저항운동의 한 형태였다. 고려정부는 이러한 현상에 대처하기 위하여 예종 원년에 처음으로 감무(監務)를 파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