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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이야기일런지도 모르겠지만, 얼마 전 꽃동네 라는 곳을 다녀오는 귀중한 체험을 하였다. 솔직히 출발 당일까지 어떻게 하면 그곳을 가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오죽이나 가기 싫었으면 친구와, 숟가락으로 버스 벽면을 파서 뛰어내릴까, 라는 농담까지 주고 받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숟가락도 챙기지 못했고, 파볼까 하기에는 다른 이의 눈이 너무 많았던 이유로 결국 도착하게 된 그곳과, 그곳의 사람들은 생각과는 너무나 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출발 전 그렇게나 그곳에 가는 것이 두려웠던 이유는 그들을 향해 인상을 찌푸리는 나 자신을 보게 될 까봐 그런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에게도 상처가 되겠지만 나 자신에게도 나라는 인간에 대한 실망감을 안겨줄 것 같아 두려웠다. 그랬던 내가, 돌아올 적엔 가벼운 마음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 날 눈을 뜨는 순간부터 몇 시간 후면 집으로 갈 수 있나를 기다렸던 마음때문만은 아니리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았지만 웃을 수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고작 몇 박 몇 일을 가지고 투정을 부렸던 자신에게 쓴웃음을 짓기도 하였지만, 그들이 그렇게 웃을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오토다케 히로타다씨는 장애는 장애라는 이유로 불쌍한 것이 아니라 그 장애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이유로 불쌍하다 말했다. 그 말에 그렇게 깊이 공감될 수가 없었다. 안아달라 두 팔을 벌리는 아이를 품에 안으면서 비록 제대로 말은 할 수 없을지언정 눈웃음 치는 까만 눈동자가 너무나 예뻐서 장애라던가, 하는 것에 상관없이 나는 그들을 발판 삼아, ‘나는 이들보다 나으니 행복해’가 아니라 나도 이들처럼 내가 가진, 내가 사회 속에서 겪고있는 장애를 극복해 내리라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