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굴원(B.C. 약 343 ~ 290)의 이름은 평(平), 원(原)은 그의 자이다. 그의 생졸년(生卒年)은 학자에 따라 일정치 않으나 육간여의 고증에 따라 초 선왕 27년에 나서 초 경양왕 9년 경에 죽었다고 하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의 이름이나 자도 <이소>의 내용에 의하면 이름은 정즉, 자는 영균으로 되어 있지만 이것은 그의 다른 목적하의 필명이거나 별명일 것이다. 어쨌든 그는 초의 왕족으로 회왕의 신임을 받아 삼려대부의 고위 관직에 올랐으며 “조정으로 들어와서는 왕과 더불어 정사를 논의 했으며 …… 물러 나와서는 여러 아래 아래 사람들을 감찰하고 아래 아래 사람들 감찰하고 제후들을 응대했다.” 왕의 총애를 독점하다가 그만 동열의 시기를 사서 해직 당하여 육양으로 천적되었다. 그 후 회왕이 속아서 초국으로 들어가려 할 때, 이를 만류하였으나 왕은 결코 듣지 않고 들어가서 결국은 돌아오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이 때 회왕의 아들 경양왕이 즉위하자 그는 또 참언을 당하여 하포로 재차 추방되었다. 비록 왕은 그를 등용하지 않았지만 그는 무척 왕을 사모하고 자기를 한번 불러 줄 것을 등용하지 않았지만 그는 무척 왕을 사모하고 자기를 한 번 불러준 것을 오매기원하였다. 그러나 왕은 끝내 그를 외면하였으므로 그는 참을 수 없는 적막과 초조와 곤궁 속에서 강호를 배회하다가 드디어는 멱라강에 투신 자살하고 만다.
초사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이소(離騷)>이다. 이소는 굴원의 자서시(自敍詩)라고 한다. 그가 조정으로부터 참소를 당하여 파직하고 강호에 묻혀 우수에 잠겨 원모에 사로잡힌 심경으로 이 작품을 썼기 때문에 “이소”라고 하였다. 이소의 의의에 대해서는 많은 해석이 있었는데, 왕일은 “離라는 것은 떠나간다는 …
초사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이소(離騷)>이다. 이소는 굴원의 자서시(自敍詩)라고 한다. 그가 조정으로부터 …
참고문헌
김학주, 명문당, 2003, 중국고대문학사
김장환, 학고방, 1999, 중국문학 입문
김장환, 서울학고방, 1997, 간추린 중국문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