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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특히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특히 문화적 이질감이었다. 교양 있는 듯한 서울말, 세련된 듯한 옷차림, 흥얼거리는 째즈나 팝송 등을 접할 때 특히 그러하다. 이러한 양상의 배후에는 미군부대에서 ‘과도하게’ 흘러나오는 구호물자 즉 미제 옷감, 미제 전축, 미제 화장품, 미제 블라우스 등 미국의 상품 문화와, 서양시, 서양음악, 서양철학을 지향하는 미국적 문화의 식민주의가 자리하고 있었다. 서울은 또한 정신과 육체 깊숙이 미국문화가 침투해 있었다. 따라서 이들 유학생들과는 도저히 조화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유일민과 천두만으로 대표되는 인물군은 중심부 서울로 진입하자 문화적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첫째 부류인 유학생들은 어떠한가. 그 세계에 편입되리라는 환상은 깨지고 더욱이 월북한 부친으로 인해 유일민 형제는 이중적인 고통 속에 빠져든다. 그들을 위해 필사적으로 적응해야할 서울은 일상적, 합리적 방편으로는 결코 장악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이들이 이런 서울과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합일될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은 그 체제에 저항하여 시위를 벌였던 4월 19일뿐이었다.
이규백이나 김선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판검사가 됨으로 하여 그들은 이 중심부 진입을 노린다. 고향의 가난을 일거에 해결하고 중심부의 지배계급으로 당당히 군림하려 한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고향에서의 평판과는 달리 그들은 여전히 주변인으로 남아 있다.
두 번째 부류, 즉 서울에서 막노동자가 된 천두만은 이렇게 느낀다.
내 논 열마지기만 있었드라도 서울로 안 떳제. 서울살이, 그것이 워디 사람 사는 것이여. 니나 나나 목구녕에 풀칠허겄다고 서로가 물고 뜯고 생지옥이제.(5-57)
나윤자, 전태일, 나복만, 천말분, 김명숙, 김광자, 문태복, 박보금, 허미경 등 무수한 이 농촌의 젊은이들이 그 수탈 체제 속에 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