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서언
이 글은 스페인 내전 당시 가톨릭교회가 보여주었던 실망스러운 모습을 짧게 적은 것이다.
1. 왕조 붕괴
1931년,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는 실정으로 인해 퇴위되고 지방선거를 통하여 제2공화정이 성립된다.(1공화정은 19세기 말에 잠깐 존재했던 정부) 새로 구성된 공화국(연립내각)은 먼저 헌법을 정했는데, 그 중 [스페인은 국교를 포기한다]는 조항이 들어간다. 가톨릭 전통이 극심한 스페인에서 이 내용은 가히 충격이었고 내각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결국 이것 때문에 보수계 인사인 총리와 내무장관이 사임했다.(`난 반대야! 스페인의 국교는 가톨릭이란 말이다!`) 가톨릭 교도들은 정치권에까지 큰 영향력이 있었던 것이다.
정부는 위 헌법 조항과 아울러 종교단체 등록제 시행, 반국가적 종단 해산 제도 신설, 사제의 국가보조 급여 지불 정지, 종교계율로 금지했던 이혼의 자유 해금(스페인 사상 최초), 교육-교회 분리의 법령을 만들었다.
2. 학교 건설
후임 총리 마뉴엘 아사냐가 가장 중시한 것은 정-교 분리 원칙이었다. 19세기에 몇 차에 걸친 교회 재산 몰수 시도가 있었으나 그 때마다 반동 현상이 일어나 실패했다. 20세기 초반에도 스페인 최대의 지주는 교회였다. 교회는 스페인 자본의 30%를 지배하고 있었다. 교회는 광산, 철도, 공업, 은행, 선박, 농장, 병원의 태반을 운영하고 있었다. [금은 가장 건실한 신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교회와 자본의 결탁 및 타락상은 심각했다. 이에 중산층은 교회에 회의감을 가졌고 노동자 농민은 교회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가톨릭은 교육계에도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 국민의 태반은 문맹이었고 교육 예산은 부족했다. 그렇다면 이 많은 교육수요를 누가 감당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