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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 천문과 지리에 관한 지식이 확대됨에 따라 중국 중심의 주자학적 우주관이 극복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들도 중국과 동등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여 오랑캐로 여기었던 청나라의 선진 문화도 수용하려 하였다. 이에 여전히 유교문화를 중시하는 문화주의적 화이관은 제시되고 있었지만, 종족이나 지역 중심의 화이관은 부정되고 있었다. 이익은 “오늘날의 중국은 대지 가운데 한 조각의 땅에 지나지 아니한다.”라고 하여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탈피하였고, 나아가 “중화를 귀하게 여기고 오랑캐를 천하게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여 성리학적인 화이관을 비판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학에서 경전시하였던 주자의『자치통감강』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고, 송대 성리학의 포폄적인 역사인식을 배제하고 역사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려 하였다. 안정복도 “옛날부터 유학자들은 언제나 중화와 이적을 염격히 구분하였고, 중국 땅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다 오랑캐라 하는데, 이것은 통할 수 없는 이론이다. 하늘이 어찌 지역을 가지고 인간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하여 이익과 같이 지리적인 화이관에서 벗어남을 보여주었다. 북학파의 홍대용의 경우에는 더욱 지전설에 의거하여 과학적으로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즉 “중국은 서양에 대하여 경도의 차이가 180도에 이르는데 중국인들은 중국을 정계로 삼고 서양은 도계로 삼는다. 반면에 서양인들은 서양을 정계로 삼고 중국을 도계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