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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역사서의 기록으로는 폭군으로 불려왔던 광해군. 현대에 이르러서는 광해군의 치적은 재조명되고 있으며, 여러 긍정적 치적들이 드러나면서 성군, 명군으로 인식되고 있다. 분명 그의 치적들 중에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범적 사례가 되어 우리들에게 앞으로의 방향 설정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그의 치적이 훌륭한 것들이 많다고 해서 과연 광해군이 모든 면에서 뛰어난 면을 보인 사람이었을까? 광해군의 치적이나 활동에서도 분명 한계는 있을 터! 그것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광해군은 집권 기간 동안 인목대비의 폐위와 영창대군을 살해하였다.(살제폐모라 한다).
요즘 잘 나오는 말로 따지자면, 광해군과 ꡐ코드ꡑ가 맞는 세력은 북인들이었다. 광해군이 집권하고 있던 시기는 당쟁이 한참 극성을 부리던 시기였으며, 다른 당의 존재는 집권당에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에 불과했다. 이러한 시국에 서인들은 인목대비와 영창대군을 옹호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광해군이 명과 청 사이의 중립적 외교 정책을 채택한 것을 두고 서인들은 결국 광해군이 왕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러던 중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사건이 일어나면서 영창대군은 사사되고, 인목대비는 페위되어 덕수궁에 유폐시킨다.
하지만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인목대비를 폐위, 유폐시킨 것은 그의 가장 큰 실수라고 할 수 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그의 능력을 다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왕의 자리에서 내쳐졌으며, 사후에 조, 종으로 추존되지도 못했고, 후에 등극하는 인조부터는 국가와 백성의 자존심이 땅에 곤두박질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