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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음악이라고 하면 우리가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郷歌이다. 하지만 이러한 郷歌에 대한 인식이 처음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있었던 것은 아니다. 郷歌에 대한 기록이 남겨져 있는 「均如伝」, 「三国史記」,「三国遺事」등의 자료를 보면 그 인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특히 「三国史記」와「三国遺事」에서 보여지는 인식의 차이는 크다고 할 수가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일연이 지은 「三国遺事」에는 郷歌에 대한 언급이 많은 반면에 김부식이 지은 「三国史記」에는 郷歌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왜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 여기에서는 「三国史記」를 지은 김부식의 음악에 관한 인식이 어떠한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三国史記」를 지은 김부식의 음악에 관한 인식의 확인이 우선시 되어야 함은 史書의 음악에 대한 기술은 편찬자의 음악에 대한 인식에 의해서 前代의 음악이 정리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三国史記」에는 위에서 밝힌 것과 같이 「三国遺事」가 기록한 소위 신라의 음악을 대표한다는 향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반면에 「三国遺事」에는 「三国史記」 악지 부분에 수록된 여러 음곡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것은 郷歌를 대표로 하는 신라 시대의 음악에 대한 김부식과 일연의 인식 태도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문제일 것이다.
김부식은 신라의 음악을 정리하면서 일연이 지대한 관심을 두었던 郷歌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김부식이 생각하는 ‘楽’의 개념에 郷歌가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김부식이 생각하는 ‘楽’의 개념은 궁중에서 연행되는 음악이었는데, 郷歌는 그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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