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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샤머니즘 사회에서 사제자로서 여무(女巫)의 위치라든가 - 모권사회(母權社會)의 일은 뒤로 하더라도 - 신라시대만 하더라도 여왕이 세 분이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도고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가 그다지 보수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고려에 내려와서도 신라만큼은 못되더라도 조선시대보다는 나았다. 애정이 자유로왔고, 왕실에서조차 재가가 가능할 정도로 인간 본연의 권리에 남녀는 철저한 제도적 차별은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부터 여성들의 지위는 완전히 제도적·윤리적으로 묶이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남녀는 태어나면서부터 귀천(貴賤)이 달라져 차별대우를 받게 된다. 이것은 한 가정 내에서 ‘부내천(夫乃天)’ 의 사상으로 연장되는 것이며, 남편을 ‘소천(所天)’이라 부르고 ‘손님같이 공손히 받드는 것’이 아내의 도였다. 이것은 곧 여필종부(女必從夫)의 유교 논리로 여성을 갇아두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는 ‘여자의 음성이 중문 밖을 나가면 그 집은 망한다’라든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등의 속담을 자연스럽게 만들게 되었다.
또한 남편뿐 아니라 출가 전에는 부모를 좇고 남편 사후에는 아들을 좇는 소위 삼종(三從)의 길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여자는 일생 중문 안에 갇히어 바깥 세상을 모르고 조상을 받들고, 시부모를 섬기고, 남편을 받들고, 아이를 기르며, 형제들 간의 우애와 노복을 거느리고 손님을 접대하는 여섯가지 의무로 되어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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