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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서 고려시대가 차지하는 위치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정치적으로 혈연적 특권층에게만 세습적으로 열려있던 정치참여의 기회가 보다 넓은 계층에게 확대되고, 능력주의적 인재선발 방법이 도입된다. 토지제도 면에서는 공동체적·국가적 지배에서 사적 소유권의 성장 방향으로, 세제면에서는 현물세에서 토지 재산 중심의 米·布 징수단계를 거쳐 금납제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사상면에서는 신비적 사상이 人智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사회에 대한 합리적 해석을 하게 되고, 여기에 실용학문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발달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진전되어 왔던 것이다. 민족 구성과 관련하여서는 읍락적 소규모적 정치집단이 규모를 확대하면서 민족으로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고려사회의 성립이 하나의 커다란 전환기라는 점에서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동의하고 있으나 고려를 중세로 파악할 경우 그 시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다.
먼저 종래의 왕조중심의 史觀과 일본 식민학자들의 중세부재론에서 벗어나 사적 유물론의 바탕위에 사회발전단계에 의한 시대구분을 적용한 이는 백남운이다. 그는 신라의 삼국통일을 계기로 대토지소유제의 진전에 따른 토지국유제의 파탄, 통일 이후 노예 공급의 중단과 농노제로의 노동편성을 촉진시킨 생산력의 양적 확산, 지방세력의 대두에 따른 국가재정기구의 파탄 등에 의하여 봉건제의 기초가 마련되면서 고대 노예제사회에서 중세 농노제사회로 전환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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