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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배경
정치가, 군사가이면서 중국공산당과 중국인민해방군,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요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가 일생 동안 세 번의 정치적 좌절을 거치면서 실각하자 서방의 중국문제 전문가들은 그를 `중국공산당의 영수가 될 수 없는` 인물로 꼽았지만, 그는 특유의 기지와 용기, 인내심을 발휘하여 마침내 중국공산당의 두 번째 영도자가 되었다. 세 차례의 정치적 좌절을 겪은 후 정권을 완전히 장악한 등소평은 중국의 부국강병과 개혁개방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이른 바 중국식 사회주의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다.
1904년 8월 24일 등소평은 사천성 광안현 협흥향 패방촌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이름은 등선성이다. 당시 운명이 다한 청나라 정부는 부패 무능하여 민생이 도탄에 빠졌으며, 서양 열강들은 중국 침략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1911년 손문이 이끄는 신해혁명이 발발했을 때 등소평은 불과 7세의 어린이로 사숙(서당)에서 신식 소학교로 전학했으며, 학교 다닐 때 이름은 등희현이었다.
1918년 말에 사천성 중경에 있는 프랑스유학 예비학교에 입학하였다가 2년 후인 16세 때에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3전 3기`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시작하였다. 1922년 중국사회주의청년단 유럽 지부에 가입하고, 그 이듬해에 중국공산당 유럽지부 기관지 편집 업무에 참여하였다. 1924년 주은래, 이부춘 등이 국내혁명으로 중국에 돌아가자, 이 해에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등소평은 유럽 총지부 책임자가 되었다. 1925년 6월 `5.30 사건`으로 핍박받던 상해 노동자들을 성원하다가 프랑스 경찰의 지명수배를 받고 소련 모스크바로 도피하였다.
1926년 3월 풍옥상을 따라 귀국하여 9월에 중산군사학교 정치교관에 임명되었으며, 그 해 말에는 중국 서북부의 풍옥산 장군 휘하에서 정치활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