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양철북>을 이제 읽냐? 난 중학교 때 읽었다`고 말하는 여동생에게 물어봤다. `너 오스카가 왜 성장을 안한 줄 알아?` 여동생의 대답, `어른들의 부조리를 보고 어른이 되기를 포기한 거지` 과연 그럴까. 여동생에게 다음 구절을 보여주자 그녀는 매우 민망해했다.
`나의 아버지라고 칭하는 사나이에게 자신의 인생을 맡긴 채 장사꾼이 되어버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84쪽)` 참고로 그라스가 자라지 않는 오스카를 모델로 한 건, 그 당시 잔뜩 뒤틀린 독일 사회를 표현하기 위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단다.
이 책에 담긴 심오한 사상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느꼈던 부끄러움을 얘기하겠다. 난장이인 오스카가 여러 여자에게 소위 `껄떡거리는` 장면에서 난 맘이 그리 좋지 않았다. 비단 이 책에서뿐 아니라, <고양이를 부탁해>란 영화에서 뇌성마비를 앓는 애가 자신의 소설을 타이프쳐주는 배두나를 좋아하는 장면에서도 맘이 불편했다. 불편한 이유가 전혀 없는데. 난장이나 뇌성마비나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고, 내가 이쁜 여자를 보면 마음이 동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그러는 게 당연한 건데. 하지만 난 왜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좋아하는 장면만 나오면 맘이 불편한 걸까. 장애인은 장애인만 사귀어야 한다고 머릿속에 박혀있는 탓일까.
말로는 `장애인을 사랑하자`고 하지만, 난 장애인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라고 말하면서 알게 모르게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아닌, 그저 동정하고 불쌍히 여겨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머리와 가슴의 괴리, 그게 내 참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