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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는 평북 정주 출생의 작가이다. 한때 1919년 2.8 독립선언서를 작성할 정도로 그 또한 여느 조선사람 못지 않게 독립에 뜻을 두었지만 후에 수양동우회 사건이라는 일로 인해 변절, 친일파가 된다. 그는 또한 ‘민족개조론’과‘민족의 경륜’이라는 논설을 발표해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민족개조론에는 자치론이라는 것이 등장하는데 그것의 요지는 이렇다. “......조선사람은 일본에 무력으로 대항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현실적으로 허용하는 한도아래서 일본의 지배아래 자치를 허용받아 실시하는 것이........“
이것은 후에 친일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게 되지만 그 때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렇듯 이광수는 문학에서는 거두라 불릴 수 있으나 후의 떳떳하지 못한 친일 행각으로 비난을 받은 비운의 작가일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에선 친일이냐 아니냐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고 처음 그의 농촌사회를 바라보고 생각했던 순수한 농촌계몽의 의지를 생각하며 보기로 하자.
이광수의 ‘흙’은 1932년,그의 나이41세 때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장편소설로 일제시대였던 1930년대의 살여울이라는 시골의 농민과 경성(서울)의 부유층과의 빈부를 비교하면서 그 부익부 빈익빈이 사회의 구조상 필연적이 될 수 밖에 없는 모순을 말하고,또한 농촌의 부훙을 위한 계몽운동과 민족의식의 고취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허숭이라는 인물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그 이유는 허숭은 전형적인 선한 인물의 표본으로 나온다. 갑진과 정선의 관계를 알면서도 오히려 둘을 용서하고 증거물을 다 태워버리고 도시에서 변호사라는 신분상 잘 살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살여울로 낙향하여 변호사라는 신분을 그곳에서 이용해 약자인 농민들을 보호하고 자신은 옥고까지 치른다. 여기서 고매한 학같은 허숭의 인격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