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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민왕 12년(1363)의 교서에서 교육기관 중에 12도를 성균관의 다음으로 들고 그 아래에 동서학당, 향교를 든 것 등은 이러한 실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최충의 이와 같은 교육 사업은 유학 계에서 커다란 반응을 불러 일으켜 다른 고관들도 앞다투어 사학을 일으켜 개경에는 12개의 사학 기관이 있었으며 이를 12공도(公徒)라고 하였다. 이들 사학의 설립자들은 당대의 대학자들이었으며, 대개 지공거(知貢擧)출신이거나 과제 급제 자들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귀족 자제들은 국자감보다는 과거 급제 율이 높은 사학으로 몰리게 되었고 그 결과 학벌(學閥)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2. 지방의 교육기관
1) 향교
지방에는 향교가 설치되어 이를 향학(鄕學) 또는 주현학(州縣學)이라고도 하였다. 향교는 지방의 국립학교로서, 유학을 교육하며 공자의 묘인 문묘를 갖춘 중등교육기관이었다. 고려에서는 일찍부터 지방에 학교가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데 기록에 분명한 것만도, 태조 13년(930)에 태조가 서경에 가서 학교를 세웠고, 성종 6년에는 12목에 경학박사(經學博士)와 의학박사(醫學搏士)를 각각 1인씩 보내어 지방자제의 교육을 맡게 하였다. 이상의 두 가지 …
참고문헌
한국사 17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사 上 - 박용운
고려음서제도 연구 - 김용선 일조각 1996.
고려시대 음서제도와 과거제도 연구 - 박용운 1990.
고려시대사 - 박용운 일지사 1985.
고려음서에서의 外孫出現과 法制變改 - 김수진 1991.
「고려와 조선왕조의 관리등용제도」- 김판석·윤주희,
『한국 사회와 행정연구』- 서울행정학회 2000.12(제 11권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