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2) 사도세자의 탄생과 성품 그리고 정치적 성향
영조는 후궁 정빈이씨의 아들인 효장세자가 있었지만 그가 10살인 어린 나이에 죽고 말았다. 효장세자가 죽은 후 7년 뒤 영조 11년 1735년 창덕궁 집복헌에서 영조의 둘째아들인 사도세자가 태어났다. 그때 영조의 나이가 42살로 손주를 보고도 남을 나이였다. 영조는 삼종의 혈맥이 끊어지려다 비로소 이어지게 됐다며 아주 기뻐했다. 그렇게 영조의 축복 속에서 태어났다. 세자는 태어난 당일 원자로 정호됐으며 생후 14개 월 만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또 영조는 세자가 오래 살기를 바라는 애정에서 군역세금을 일시정지하거나 많은 죄수를 방면하는 여러 조치들을 취했다,
또한 세자는 성군의 기질을 어렸을 때부터 보여줬다. 일예로 세자가 19개월이 되던 때 중관이 문방도구를 바치니 종이를 펴 놓게 하고는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렸는데 붓대 놀리는 것ㄱ이 매우 익숙했고 획을 긋는데 매우 힘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두 살 때는 천 지 부모 등 63자를 해득할 정도로 조숙했다.
세자는 효종을 빼 닮았다고 한다. 효종은 삼종의 혈맥의 시초가 된 임금으로 삼종이란 효종, 현종, 숙종 세 임금을 말하며, 삼종의 혈맥이란 그 세 임금의 피를 이은 아들을 말하는 것이다. 하여 영조에게 사도세자는 더욱 소중한 아들이었다. 세자는 자라면서 문(文)보다 무(武)를 더 좋아하고 국내의 파벌보다 북벌에 더 관심을 두었다. 영조는 이런 세자를 최고의 현군 성군으로 키우고 싶어 하였다. 세자는 조숙하고 총명한데다가 영조의 총애를 독차지하여 언행에 거리낌이 없었다. 게다가 호기심이 많아 지난날의 정쟁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기존 질서에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한 당파에도 기울어지지 않는 중심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