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노랑눈`은 인식의 한계로 도무지 알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무엇인가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고, 서러워한다. 소녀를 이처럼 어두운 감정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전쟁이라는 뜻밖의 비극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가정이 소녀에게 떠넘긴 상처일 것이다. 징집되어 전쟁터로 끌려간 아버지와 가장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술집에서 일 하는 어머니, 계속되는 오빠의 폭력 등의 불행하고 뒤틀린 삶은 선명한 칼자욱을 남긴채 소녀의 가슴 속에 그늘을 만들었다. 피난민의 삶으로의 전락과 분열된 가정은 소녀에게 물질적 가난과 애정 결핍의 고통만을 주고, 소녀는 도벽과 허기증으로 인한 과식으로, 또 환상과 그리움으로 황폐해진 유년을 버텨간다. 하지만, 소녀는 타인에게 상처받고, 상처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를 통해 겉도는 가족을 그리는 시선은 낯설고 때로는 섬뜩하기조차 하지만,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연민을 느끼게 한다.
`유년의 뜰` 역시 오정희의 세계의 변함 없는 주제인 `일상적인 삶 속에 깃든 죽음과 탄생, 깊은 비극성`을 목격할 수 있다. 소설은 아버지의 부재와 막내 동생의 죽음에 대한 예감, 부네의 죽음 등, 타인을 관찰하며 아무런 일도 없는 듯 고요하기만한 시간 속에서 음험하게 도사리고 있는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스쳐가는 순간의 인상으로 무겁게 드러낸다. 내면의 깊숙한 밑바닥에 가만히 침잠해 있는 `죽음`은 겨울의 차고 날카로운 바람속에서 쩍 갈라진 메마른 흙바닥과 같다. 그러나 흙바닥의 밑에는 웅크리고 멈춘 듯하지만, 조심스레 흐르는 물이 있다. 물은 고여 썩지 않는다. 봄이 오면 죽어가는 모든 것을 소생시키는 힘을 가진 생명의 원천이 숨쉬고 있다. 오정희가 생각하는 `죽음` 속에서도 언제나 생명이 끓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