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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시(新體詩)’라는 명칭은 일반적으로 명치 시대에 동경 대학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편찬한 『신체시초(新體詩抄)』(1883)에서 온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신체시초』의 ‘신체’란, 구체시(舊體詩), 즉 한시나 화가(和歌)를 의식해서 지은 명칭이라고 한다. 신체시가 ‘poetry`에 해당하는 개념에서 비롯된 것임은 『신체시초』의 권두 범례가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신체시’라는 용어는 당시의 산문이나 잡지에서 1910년대는 물론, 1930년대까지도 간혹 ‘신체시’ 또는 ‘신시’, ‘신시가’, ‘시체시가’라는 표제 아래 작품을 모집한다거나 싣고 있어 그 당시에 일정한 시가 장르를 의식하고 그렇게 불렀다기 보다는 옛시가형에 대한 새로운 시가라는 뜻의 범칭으로 사용했었던 듯 싶다.
다만, 최남선 자신이 이 장르 규정을 위해서 ‘신체시가’라 했던 점을 참고한다면 지금에 와서 그 장르명은 ‘신체시’로 부르는 것이 좀 더 타당하다 할 것이다.
시니체시는 근대정신의 소산으로 전통적인 인습을 타파하고 서구 문화를 수용하려는 근대화 운동의 표현이기 때문에 그 이전의 전통시가와는 다른 이질적인 것이다. 즉, 신체시는 이전까지의 가창을 전제로 한 고시가와 개화가사 혹은 창가의 율조에서 벗어나 산문화한 자유시에로 이행되는 과도기의 시적 형태의 하나이다. 정형성(율문성)의 탈피, 구어체의 채용 등은 이전 시가와 대비되는 신체시의 주요 특징들이다. 신체시의 등장은 자유시의 형성과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계라는 점에서 일정한 문학사적 의미를 지닌다.
우리 시가 서구시에 접근하려는 노력의 첫 표현은 김억이 1918년에 프랑스 상징과 시인들의 시를 번역하여 <태서문예신보>에 실은 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도화선으로 1919년 2월에는 <창조>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문예지가 나오게 되는데,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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