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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바탕으로 1875년부터 파리의 17구의 ‘샤젤 거리 rue de Chazelles’에 위치한 ‘몽뒤 Monduit’, ‘가제 Gaget’, ‘고띠에 Gauthier’ 의 작업실에서 만들기 시작한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이며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뿐만 아니라 ‘나폴레옹3세’ 제정 시대에 수 많은 작품을 남긴 ‘비올레 르 뒥 Eugene Viollet-Le-Duc ‘(1814-1879)이 여신상의 구조 설계를 맡아서 작업을 시작한다.
히프가 삐죽 튀어나온 초기 안으로 작업을 실행하면서,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자, 튀어나온 히프를 집어넣고 자세를 똑바로 세우면서 치마 주름을 더 부풀리고, 히프를 흔드는 이집트 여인의 모습보다 좀더 완고한 이미지의 여신상으로 수정된 것이다.
위원회에 제출된 높이 1.25미터짜리 원형을 2.11미터로 확대하여 만들고, 다시 8.5미터의 높이로 만들어서 이 모델을 정확히 측정하여 4배 키운 것이 현재의 여신상인 것이다.
최대 1.4미터의 동판들은 나사로 임시 고정을 시켰다가 미국에 도착하여 조립하면서, 비스듬히 자른 각 동판들을 정확히 25센티미터 겹치게 포개놓고, 두께 5밀리미터 짜리의 리벳으로 고정을 시켰는데, 얼마나 정교하였던지 이음새 부분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이었다고한다
당시 재력가 ‘삐에흐 으젠느 스크레탕 Pierre Eugene Secretan’이 여신상의 외부를 둘러싸도록 2.37 밀리미터짜리 동판 300장을 기부하고, 정부로부터 최고의 명예 훈장인 ‘레지옹 도뇌흐 Legion d’honneur’를 받았다
공사는 지연되고, 더군다나 핵심 구조를 설계한 건축가 ‘비올레-르-뒥’이 내부 구조를 완성하지 못하고 1879년 사망하면서, 기차를 위한 철교 건설로 유명하던 토목 공학자 ‘에펠 Gustave Eiffel ‘ (1832-1923)이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에펠’은 먼저 취약하던 구조를 보강하고, 그 위에 5 * 0.8 센티미터의 철 막대로 촘…
`에펠’은 먼저 취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