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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학교의 원래 목적은 ‘전문적인 직업인’을 양산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 나라의 경제적·행정적 필요, 각별히 신전과 왕궁의 그러한 면들을 충족시키는 필경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처음 설립되었다. 그러나 그 성장과 발전의 과정에서, 특히 교과과정이 계속 늘어난 결과로 학교는 수메르에서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건물 안에서 고대의 인문학자이자 과학자들은 신학, 식물학, 광물학, 지리학, 수학, 문법, 언어 등 모든 지식을 연구하고 성과를 더해나갔다. 더하여 오늘날의 학문기관과는 좀 다르게 수메르 학교는 창작의 중심지 역할도 했다. 즉, 과거의 문학창작물에 대한 연구와 사본작업이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창작들도 지어졌다.
수메르학교 졸업생들의 대부분은 신전과 왕궁에 봉사하는 필경사들이 되었지만, 그 나라의 부유하고 힘있는 자들 가운데 일부는 그들의 삶을 배우고 가르치는 데 바쳤다. 오늘날의 대학교수와 마찬가지로 이 고대 학자들의 많은 수는 그들의 교수비로 먹고 살았고, 그 외의 남는 시간에 연구와 저술을 했다. 처음에는 신전의 부속기관으로 출발했을 수메르 학교는 세월이 흐르면서 세속적인 기관이 되었으며, 그것의 교과과정 역시 대개 세속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학생들로부터 수업료를 받았다.
그 시대에는 교육이 보편적이거나 의무적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유한 가정 출신이었으며, 가난한 자들은 장기적인 교육이 요구하는 시간과 금전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리고 수메르 학교의 학생들은 오직 남자들뿐이었다.
수메르 학교의 장은 ‘전문가’, ‘교수’를 뜻하는 ‘움미아’였고, ‘학교 아버지’라고도 불렸다. 이에 반해 학생은 ‘학교 아들’이라고 불렸다. 조교수는 ‘큰 형제’라고 불렸으며, 그의 임무들 가운데는 학생들의 베낄 새 점토판을 새기고, 그들이 공부한 내용을 암송하는 것을 듣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