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소년은 세 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섰다. 소년이 저수지 밑 논둑에 앉아서 하루 세 시간씩 책을 읽기 시작한지도 언 삼 일이 지났다. 드디어 오늘, 책의 마지막 장이 넘겨졌다. 더 이상 책갈피를 끼우면서 다 읽지 못한 아쉬움을 표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소년의 표정은 책 사이에 책갈피를 끼울 때 지었던 표정보다 훨씬 그늘져 있었다. 차라리 아쉬울 때가 나았다는 듯, 소년은 한참동안 책 표지의 「새의 선물」이란 글자 중 ‘선물’ 이란 부분을 손가락으로 닦았다. 아니, 닦았다는 표현보다는 문질렀다는 표현이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글자 위에 여러 줄로 지문자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소년은 손에 쥐고 있던 책을 논둑에 던지듯 떨어뜨려 버렸다. 동시에, 소년이 오랜 시간 앉아 있어서 동그랗게 자국이 나 있던 풀밭으로 책이 떨어졌다. 소년은 책을 줍지 않았다.
“거짓말…….”
소년은 누군가에게 하는 말인지 분간하기 힘든 한마디를 허공에 남긴 채 뒤돌아서 가버렸다. 지금 소년의 주위에서 소년이 하는 말을 들을 만큼 잘못을 저지른 것은 무엇일까. 세 시간동안 소년의 엉덩이에 안락한 방석 역할을 해준 잡초? 아니면 소년이 독서하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아무 투정 없이 묵묵히 지켜봐 준 하늘? 저수지? 이것도 아니면, 여태껏 소년에게 삼 일간 봉사해준 책? 혹시 책일까?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삼 일간 소년의 표정 변화를 분석해 보면 잡초나 하늘, 저수지보다는 책일 가능성이 크다. 처음에 사 백 페이지나 되는 소설책을 품에 안…
소년은 누군가에게 하는 말인지 분간하기 힘든 한마디를 허공에 남긴 채 뒤돌아서 가버렸다. 지금 소년의 주위에서 소년이 하는 말을 들을 만큼 잘못을 저지른 것은 무엇일까. 세 시간동안 소년의 엉덩이에 안락한 방석 역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