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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 때의 기생 소생으로 태어나 경상도 동래현의 관노 출신이라고 알려진 장영실이 엄격한 신분제가 행해지던 당시에 노비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속의 살아있는 과학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바로 신분보다는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한 세종의 현실적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당시 노비인 자를 궁중에 두어 관리로 중용케 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기에 모든 문무(文武)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장영실과 같은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대신들을 설득하여 결국 장영실을 채용하게 된 것이고, 신분적 제약으로부터 보장을 받을 수 있었던 장영실은 자동시보장치 자격루 등의 발명품들을 제작할 수 있었다.
만약 장영실이 세종대왕이 없는 오늘날의 학력위주 사회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펼쳐졌을까? 학력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부활한 장영실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발명왕 대회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장영실은 과학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미역국을 먹었다. 과학은 잘했지만 수학과 영어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장영실은 지방대를 졸업한 뒤 연구소에 지원했지만, 박사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연거푸 떨어졌다. 학벌이 나빠서 대기업 취직도 되지 않았다. 이때 장영실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미국의 한 벤처기업이 아파트와 자동차까지 제공해주며, 그를 특별 채용했다. 그러자 장영실은 이에 보답하기 위해서 연구에 몰두했고, 마침내 ’타임머신‘과 ’영구동력기‘를 만들어 냈다. 뒤늦게 한국 정부가 SOS를 보냈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부활한 장영실의 인생을 통해서 우리는 자문하게 된다. 과연 학력이란 올가미 속에 갇힌 우리들을 풀어줄 세종대왕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