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 원수(元秀)이며, 어머니는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이다. 어려서는 주로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1548년(명종 3) 13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했다. 16세에 어머니를 여의자 파주 두문리 자운산에서 3년간 시묘(侍墓)했다. 1554년 성혼(成渾)과 교분을 맺었다. 그 해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다가 다음 해 하산하여 스스로 자경문(自警文)을 짓고 다시 유학에 몰두했다. 1558년 23세 되던 해에 예안(禮安)의 도산(陶山)으로 가서 당시 58세였던 이황(李滉)을 방문했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서신을 통하여 경공부(敬工夫)나 격물(格物)·궁리(窮理)의 문제를 왕복문변(往復問辨)했다. 1564년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기까지 모두 9번에 걸쳐 장원을 하여 세간에서는 그를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일컬었다. 1564년 호조좌랑에 처음 임명된 뒤 예조좌랑·정언·이조좌랑·지평 등을 지냈다. 1568년(선조 1) 천추사(千秋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明)나라에 다녀왔으며, 부교리로서 춘추관기사관을 겸하여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이듬해 사직했다가 1571년 다시 청주목사로 복직했고, 다음해 다시 해주로 낙향했다. 1573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