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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밀양에서 태어나 이후 상경하여 민족주의성향이 짙은 중앙학교에서 수학하였는데 현재 중앙고등학교의 전신이다. 당시 중앙학교는 계몽운동가들이 민족독립의 후진양성 차원에서 만든 학교인데 김원봉이 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민족주의자인 유근이 교장으로 있었다. 따라서 초기 김원봉은 민족주의적 성향을 교육 받은 듯싶다. 교장 유근이 학생들을 강화도 마니산으로 데리고 가서 단군이야기를 해주면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자 학생과 교사가 모두 울었다는 일화가 있다. 김원봉은 학교를 중퇴하고 선후배인 김약수, 이여성과 중국 남경의 금릉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 김원봉의 호가 약산인데 우국지사이자 고모부인 홍명규가 물과 같아라 약수, 별과 같아라 여성, 산과 같아라 약산으로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과거 조선에 관한 흉악한 음모로서 이미 폭로된 것은 모두 이들의 소위라 할 만큼 의열단은 광포한 암살단으로, 경남 밀양 출신의 김원봉이란 청년을 단장으로 하고 있다. 동단체가 조직된 것은 다이쇼(대정) 9년으로 그 후 동인은 상해, 북경, 천진을 구치(구치)하면서 항상 음모를 기획하고 있어서 당국에서도 그를 체포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고심하고 있다.”
당시 악명 높던 마루야마 조선총독부 경무부장의 담화문이다.
1919년 김원봉은 의열단을 조직하고 의백(단장)이 된다. 앞에 연재했던 조선총독부 폭파사건, 다나카 기이치 저격사건, 종로경찰서 폭파사건 외에도 밀양경찰서 폭파사건, 도쿄 이중교 폭탄사건, 부산경찰서 폭파사건, 김달하, 박용만 등 친일파 암살 등 의열단은 수많은 대일 테러와 암살을 감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