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작가는 소외된 `난장이`의 모습을 서로 대립적인 이미지를 통해 더욱 극렬하게 나타내고자 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함과, 뜻하지 않은 현실에서의 좌절, 나름대로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며 더없이 평화로웠던 한때와 쇠망치로 인해 헐리는 보금자리의 참담한 모습을 마주하는 그들을 통해 우리는, 난쟁이의 아픔을 더욱 절실하게 느낀다. 주머니가 달린 옷을 싫증이 나서 벗어 던지고, 적어도 이틀에 한번씩은 상에 올라오는 고기반찬에도 반찬투정을 부리는 우리 세대, 특히 나에게 `난장이` 의 모습과 아픔은 일종의 자극제였다. 내가 살고있는 이 시대를 좀더 깊은 관찰력과 성숙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책을 보며 `난장이`를 대하는 내내, 나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따뜻한 사람냄새를 풍기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설을 가슴으로 느끼고 진심으로 `난장이`의 아픔을 위해주는 독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난쟁이는 희망을 저 죽음의 끝으로 던져버린 채, 더 이상 자신이 설 곳이 없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의 행복한 웃음을 기대하는 독자의 바램이 전달되기엔 작가가 겪었을 고통과 그 시대, 소외된 이들의 아픔이 너무 높은 담벽을 쌓고 있어서 일까? 아니면 일말의 변화도 없이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살아왔던 독자의 안일함에 화가 나서 일까?
다시 한번 내 자신을,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돌아본다. 소설 속 지섭의 말처럼 어쩌면 이 세상은 남을 위해 눈물 한 방울 흘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죽은 세상인지도 모른다. 이루고자하는 목표를 위해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는 눈멀고 귀멀어, 자신만의 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의 눈빛에서 타인에 대한 사랑을 읽기란 이미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그 동안 학교라는, 입시라는 틀 안에 갇혀서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스한 눈빛, 따뜻한 손길 하나 건네지 못했다. 그리고도 갖은 언어의 유희들로 내 자신을 합리화하는데만 급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