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김산이라는 이름은 이 책을 간행하기 위해 김산과 님 웨일스가 상의하여 부친 이름으로 금강산에서 따온 것이다. 그의 본명은 장지락(張志樂). 김산이 님 웨일스의 펜을 빌려 우리를 인도하는 세계는 정말 미지의 세계였다. 1984년 당시 사학도들은 김산이 님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난 이듬해에 일제간첩으로 몰려 중국공산당에 의해 부당하게 처형당한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금강산의 붉은 승려 김충창이 김성숙이었는지도 몰랐다. 김산과 갈등을 빚은 한모가 한위건이었는지도 몰랐고, 조선과는 수만리 떨어진 광동에서 일어난 봉기에 조선혁명운동의 정화라 할 수 있는 청년 수백 명이 참가하여 이슬처럼 사라진 사실도 알지 못했다.
열다섯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일본으로, 만주로, 상해로, 북경으로, 광동으로, 연안으로 중국대륙을 좁다 하고 혁명투쟁의 현장에 몸을 내던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은 섬 아닌 섬이 되어버린 분단국가의 남쪽에서 낳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김산의 짧은 삶은 바로 우리 민족해방운동의 성숙과정이기도 했다. 1905년에 태어난 김산은 이 시대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31운동의 좌절 속에서 정치의식을 갖게 된다. 그는 국제정의의 실현과 민족자결주의의 약속 이행을 곧이곧대로 믿다가 베르사유 강화회의의 결과에 심장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을 맛보고, 또 외국인 선교사들이 서툰 우리말로 “한국이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한국에 벌을 내리고 계신 것”이라고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는 것에 분개하여 기독교를 버리게 된다. 어린 김산은 31…
김산의 짧은 삶은 바로 우리 민족해방운동의 성숙과정이기도 했다. 1905년에 태어난 김산은 이 시대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31운동의 좌절 속에서 정치의식을 갖게 된다. 그는 국제정의의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