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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가 살았던 18세기는 사회·경제·사상등 여러 방면에서 많은 변동이 있었던 시기였다. 임진왜란(1592)이후 조금씩 증가하면서 조선 전기 사회의 기반을 이루었던 신분제의 이완과 사회 신분의 변동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양반인구의 사회적 증가는 양반 서얼의 통청이나 중간신분층과 서민층의 신분상승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런 영향으로 정조 때 처음으로 서얼출신에게 미관 말직이긴 하지만 검서관으로 등용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덕무도 이때 검서관으로 등용되어 그의 박학한 지식을 펼치게 된다.
경제적으로는 상업 유통 경제가 활성화 되면서 농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상·공업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사상계에서는 주자학의 정치·경제·사회이념에 입각하여 운영되어오던 조선사회가 이 시기에 들어서 사회 각 분야에 걸쳐 각종 모순들이 드러나게 되자 이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사상운동의 일환으로 실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실학은 당색을 불문하고 사회 제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사대부 지식인들의 학문적 노력의 결과 성립되었다. 서인·노론에서도 당시의 사회경제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시폐를 지적하고 시무를 논하며 경장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비록 노론의 주류는 성리논쟁이나 예론에 몰두하고 명분의리에 사로 잡혀 있었지만 노론계의 몇몇 학자들은 청조문물을 직접 접하고 이에 자극 받으면서 새로운 학풍을 일으키고 학파를 형성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여기에 속하는 인물로서 홍대용(1731~1783)·박지원(1737~1805)·이덕무·유득공·박제가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당시 청조의 융성한 문물과 기술을 적극 도입할 것을 주장하였던 공통성에서 ‘북학파’라 일컫는다.
참고문헌
1. 금동현, 『한림대소동고전연구16』「이덕무 문학이론의 사상적 토대와 그 의미」, 한림대학교, 1999
2. 이화형M 『이덕무의 문학연구』, 집문당, 1994
3. 류재일, 『이덕무의 시문학연구』, 태학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