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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헌으로 본 술의 역사
제왕운기에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의 어머니 유화가 북부여인을 만나 고주몽을 잉태하게 되는 과정에서 술이 등장을 하고,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부여, 마한, 진한, 고구려등이 제천행사시에 밤낮으로 음식가무(飮食歌舞)를 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일본의 고사기에 백제 사람 인번(仁番)이 술 빚는 기술로 일본의 酒神으로 추앙받았다는 기록은 당시의 우리나라 양조 기술과 문화가 어느 정도 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 중 - 후기의 해동역사와 지봉유설에서는 당대(唐代) 이상은(李商隱)의 시에서, “한 잔 신라주(新羅酒)의 기운이 새벽바람에 사라질까 두렵구나”라고 한 것을 보아 신라의 술은 중국인에게까지 찬양의 대상이었을 짐작케 한다.
고려시대 대표적 문장가였던 이규보의 [국선생전]엔, ‘주중청자위성인(酒中淸者爲聖人)’이라고 하여 당시에 청주가 上品의 술로 애용되었음을 알 수 있고, 소주의 등장은 고려시대의 특징 중 하나이다.
이외에 여러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주종은 대략 650여 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면서 전통주는 유교 중시의 국가정책과 함께 농경의 발달로 가양주 문화를 꽃피우게 되고 더욱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경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한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주인공인 수메르인들의 유적에는 기원전 4500년경에 포도주를 양조한 기록이 있는데, 수메르는 환국 시대 12환국중 하나로써 동방 한민족의 문화적 시원성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