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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당왕조는 현종(685~762)말년에 발발한 안사의 난 이후, 번영은 사라지고 번진(번진)의 할거로 통일국가의 체모를 잃게 되었고, 환관과 관료들의 당쟁으로 말미암아 쇠망의 길에 접어들고 있었다. 또한 조세부담으로 많은 농민들이 산림에 숨어 군도로 변하였다. 이 군도들의 조직이 황소의 난이라는 대규모 농민폭동을 일으키게 된다. 10년에 걸친 대란이 있은후 얼마 되지 않아 당제국은 멸망하고 5대 10국의 혼란한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문화적으로 말기의 당은 시대적 위기로 말미암아 인간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깊은 성찰을요구했다. 불안한 시대의 단층을 직시하고 철학보다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사색을 필요로 하여 선종이 융성하여 오가라는 독자적인 선종제파의 형성을 보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고문이 쇠퇴함과 아울러 고시제작의 의욕도구로 구성하며 운율의 규칙까지도 있는 율시에 가까운 병려문이 출현하였다. 따라서 최지원의 문장은 이러한 병려문제를 계승, 발전시킴으로써 당에서 돌아온 뒤 헌강왕에게 올린 28권의 <계원필경집>,이나 왕명을 받들어 찬술한 <사산비명>모두 당대 문화의 극치라 할 수 있는 4·6병려문을 구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정치로서의 유학은 유가 경전의 훈고에 치중하고 있었으며 관학으로서의 기반도 서서히 굳혀가고 있었다. 도교는 노자의 성(성)이 당 황실과 동성이라는 이유로 황실의 비호를 받아 성황을 이루었는데 특히 당황들이 단사를 복용하여 장생을 희구하였기 때문에 도사들이 크게 세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이처럼 당말의 사상체계는 유·불·도 삼교가 혼합적으로 존재하였으므로 최치원에게도 특별한 영항을 주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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