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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학에 입문한 1893년부터 기독교에 입문하는 1903년까지.
백범은 1893년 18세 때에 `사람은 양반이나 상놈이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평등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동학사상에 매력을 느끼고 입문하게 된다. 아마도 그의 집안 내력과 과거를 치른 후의 그의 심적 충격으로 인해 더욱 동학에 빠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양반 상놈 구분 없이 평등한 새 백성들끼리 외국의 압력이나 간섭을 받지 않는, 새 나라를 세울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동학은 그야말로 백범 자신의 생각과 같았기 때문이다. 동학에 입문한 후 백범은 18세의 어린나이로 동학의 접주가 되고,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나 해주성 싸움에서 대패하게 된다.
1895년에 백범은 신천군 청계동의 안태훈에게 몸을 의탁하고 그의 아들인 안중근을 만나게된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그의 사상에 많은 영향은 끼친 스승 고능선을 만나 유학을 배우게 된다.
이 해 8월에 백범을 독립운동의 길로 가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일본의 모리배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이다. 백범은 그 길로 김이언의 부대에 지원하여 국모를 살해한 일본인들을 처단하기 위한 의병활동에 참여하였으나 실패한다.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