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혹은 태평양의 끝』는 다니엘 디포우의『요크의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신기하고 놀라운 모험』을 현대감각에 맞게 다시 쓰기 한 것이다. 디포우의 주인공들은 투르니에의 세계 속에서 상징과 언어의 힘을 통하여 새롭게 태어난다. 이것은 투르니에가 디포우의 『로빈슨 쿠르소』를 패러디 하여 새로운 해석을 내리는 데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즉 고도의 지적 비판능력의 승리이며, 비평적 거리 두기의 승리를 의미한다.
두 작품을 비교해 보았을 때, 유사한 듯 하면서도 작가의 관점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남을 알 수가 있다. 18세기 디포우의 텍스트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해석을 내린, 20세기 투르니에의 세계에 대한 독자적이고 발전적인 관점을 규명하고 그 관점이 시사하고 있는 바를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고 『방드르디 혹은 태평양의 끝』의 그 대략적인 내용과 『로빈슨 크루소』와의 차이점, 그리고 이러한 차이점이 어떻게 드러나는 지에 대해 살펴보고, 아울러 두 작가간의 세계관의 차이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자.
1. 『방드르디 혹은 태평양의 끝』의 대략적인 내용
1759년 9월 29일 버지니아호의 반 데셀 선장과 선장실에 함께 있던 로빈슨은 11장의 타로카드 점을 보게된다. 이 부분에서는 소설의 전체적인 맥락을 제시하여 준다.
로빈슨은 난파당한 후 모래 위에 쓰러져 있다가 의식을 회복하고 혼자 섬에 살게 된다. 그는 뗏목을 타고 나가 난파당한 배 안에서 성서, 폭약, 담배 반 데셀 선장의 파이프, 개 텐을 데리고 나온다. 이후 그는 절망한 나머지 진흙과 배설물들의 늪인 진창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는 점차 현실에 대한 의식을 상실해 가며 10년 전에 죽은 그의 누이동생 뤼시의 환영을 보게 된다. 점점 미쳐 가는 자신을 깨닫고 그는 섬을 스페란자로 부르기로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