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3. 잡가의 출현과 잡가의 개념
18세기 이후 우리 문학사에는 근대를 지향하는 여러 움직임이 시도되었다. 특히, 시가사의 중심 장르인 시조는 17세기 말 이후 그 담당층이 사대부에서 중간계층으로 옮겨지면서 여항의 예술로 새롭게 출발하였다. 특히 사설시조의 등장은 평시조를 비롯한 시가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가사는 오랫동안 노래 부른다기보다는 읊기만 하는 이른바 음영가사(吟詠歌辭)로 머물렀다. 잡가 역시 이 시기에는 사당패와 같은 하층 유랑연예인들의 입을 통해, 향유, 전승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것이 본격적으로 도시 유흥공간의 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19세기 중엽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18세기까지는 여항예술인 시조 및 가사음악과 민중예술인 잡가 사이에 계층적 경계가 두텁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에 들어 신분이 갖는 사회적 규정력이 줄어들고 ‘돈’이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측면이 점차 강해짐에 따라 여항예술과 민중예술 사이에 존재하던 경계가 서서히 해체되기 시작한다. 그 후 유이민의 도시 집중화와 이에 따른 도시 상업화는 더욱 촉진된다. 도시의 상업화는 도시의 분위기를 유흥적으로 변모시켰다. 도시민의 유흥적 태도는 19세기 유흥 공간의 비약적 확대를 가져왔다. 계급을 경계로 한 예술의 분화는 경제력을 가진 보다 많은 수용자층을 만들어 냈다. 이로 인해 예술의 전문화가 이루어졌다. 가곡창의 전문화 역시 이러한 민속악의 부상에 따른 일종의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예술의 계급적 경계가 해체되기 시작하고 시정의 아마추어 애호가나 삼패 기생들과 같은 하급 예인들을 수요층으로 해서 『남훈태평가』계열의 방각본이 발간되면서 본격적인 음악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점점 커져가는 향유층의 욕구를 유랑 예인 집단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19세기 후반 잡가꾼이라 할 전문적 소리패가 등장하여 잡가의 문화적 욕구를 …
점점 커져가는 향유층의 욕구를 유랑 예인 집단이 감당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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