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Ⅰ. 서론
요즘엔 세상을 구하겠다고 뛰어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신문과 뉴스에는 어느 정신병자가 외쳤던 한 마디 쯤으로 여겨진다. 밀레니엄 시대라고 여겨지는 이 시대가 아무리 개성과 개인차를 존중해주고 알아주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아직까지 세상을 위해 죽겠다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 더구나 마치 자신이 예수라도 되듯이 세상을 위해,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거짓말들이 판치는 세상인지라 더욱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작품의 심청이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인당수에 빠져들겠다는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태석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여기의 이 심청이는 우리에게 친숙한 고전인 [심청전]의 심청이가 분명하다. 하지만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죽었던 그 시대에서 그 내용과 형식면에서 완전 다른 모습으로 바뀐 현대 시대이다. 심청이가 그 당시에만 해도 인당수에 물에 빠진 사건은 효(哮)의 기본을 보여준 훌륭한 이야기가 분명하다. 하지만 현대시대에 온 심청이가 물에 빠진다면 우리는 아마 놀부보다 흥부를 더 나쁘게 보듯이 ‘왜 쓸데없이 남을 위해 물에 빠져?’라는 한마디 비평과 함께 쓸데 없는 죽음을 자초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가 아무리 심청이의 죽음을 하찮게 여긴다고 하더라도 심청이는 두 번째 몸을 던진다. 그가 몸을 던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 중심적인 사고로 가득찬 현대의 세상속에서 마치 매우 강한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많은 인간들이 사실은 나약해 빠졌음을 알기 때문이다. 쥐뿔도 없으면서 겉으로만 강한 척하는 세상의 많은 것들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다시 한번 물에 빠지는 것이다.
작품을 좀더 자세하게 다루면서 심청이의 두 번째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사건이 이루어진 원인과 그 사건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