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산문작가는 글을 쓰고 시인도 쓴다. 그러나 쓴다는 이 쌍방의 행위 사이에는
글씨를 쓰는 손의 움직임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그 이외의 것에 있어서는 그 두 세계는 전혀 상통하는 바가 없으며,
한쪽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다른쪽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그는 시와 산문의 경계기준을 쓴다는 공통점과 언어의 이용하기에따라 분류해놓았는데 그 기준이 모호하다. 시와 산문은 쓴다는 공통점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표현하는 방법도 전혀 다르지 않을뿐더러 같은 소재를 사용한다. 또한, 시의 산문화로 인해 둘 사이의 기준은 더욱 모호해졌다.
산문가란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규정하려고 한다
산문이라는 기술의 행사는 담론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 소재는 당연히 의미적인 것이다.
샤르트르의 산문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몇 번이고 1장을 다시 읽으며 산문과 시의 기준, 산문의 범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는 즐거움보다 관념을 정확하게 지시해놓는 것이 진정한 산문이라 하였다. 따라서 작가의 소리가 높은 논설문만을 산문으로 삼아놓았으며, 소설은 산문에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
시의 입장에서 언어를 거꾸로 보도록 종용하는 이상,
어떻게 독자의 분노나 정치적 정열을 부추길 수 있겠는가?
작가의 소리가 담긴 논설문 만이 독자의 분노와 정열을 불러일으키진 않는다. 실제로 일제강점기시대 저항시인들은 시를 통해 대중들에게 자주독립의 씨앗을 불어넣어주었다. 소설도 마찬가지로 시대의 상황을 풍자하며 울분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오히려 어려운 관념적인 것들은 대중들의 이해가 어려워 큰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처럼, 논설문만이 바람직한 글이 아니다. 그 사회의 독자 수준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