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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탈리 카네프스키
1935년 스촨(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에서 태어났다. 10대 시절, 그는 도둑이었고 자물쇠 따기의 천재였다. 그러나 훔친 버터를 싼 신문지 조각에서 모스크바 영화학교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되고, 그는 무일푼으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8,000km 거리를 여행하여 영화학교를 찾아가지만 입학을 거부당한다. 다시 절도, 감화원 수감, 그리고 군대. 하지만 그 와중에 카네프스키는 `푸쉬킨 박물관`에 들를 수 있었다.
비탈리 카네프스키는 결국 얌전히 규칙을 받아들이며 모스크바국립 영화 학교에 입학한다. 1960년, 이 영화학도는 벌써부터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꺼야■의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었으며 몇 달 후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였다. 그러나 작품의 주제에 겁을 먹은 당국은 그에게 영화 제작을 포기시키려 했다. 비탈리가 고집을 부리자 이번에는 날조된 강간을 핑계로 다시 체포, 감옥에서 8년을 살게 했다. 결국 첫 영화는 30년의 기다림이 걸렸다.
41세가 되던 1977년, 영화학교를 졸업한 직후 비엘로루스필름에서 단편영화 ■네번째 비밀■을 찍었으나, 1981년에 찍은 단편영화 ■시골 이야기■가 사상성과 대중동원력에 있어 ‘쓸모없는 감독’으로 낙인 찍혀 몇 년 동안 영화를 찍지 않게 된다. 그 후 그의 자전적 시나리오를 읽은 작가 에두아르드 볼로다스키의 주선과 그의 재능을 인정했던 렌필름의 알렉세이 게르만의 지원으로 ■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 거야!■를 찍었고, 이 영화 한편은 깐느 영화제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2년후 , 데뷔작이 몰고온 각광 속에서 카네프스키는 두번째 영화 <눈오는 날의 왈츠>를 발표했다. 첫 번째 영화의 강렬함 위에 아련한 애수의 서정이 더해진 <눈오는 날의 왈츠>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고 이제 언론들은 그를 세계 영화의 거장으로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