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저곡가 정책과 함께 미국의 원조라는 이해가 맞물리면서 양곡을 수입하게 되었다. 보다 싸게 음식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단지 밀가루만 수입한다고 해서 밥맛에 길들여져 온 우리국민들의 입맛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정책적으로 밀 소비를 촉진시키는 이른바 분식 장려 운동을 벌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우리가 즐겨먹는 라면, 빵, 과자 등의 분식이 많이 생겨났다. 지금 우리는 라면의 맛에 길들여져 있어서 옛날 사람들도 금방 그 맛에 적응하고 좋아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지만, 라면이 도입되었을 당시 사람들은 거부감을 가졌고 라면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가에서 분식 장려정책을 시행하자 위에서 말한 빵, 라면, 과자 등의 상품이 많이 팔리게 되었고 관련된 사업을 시작한 기업들이 지금까지도 큰 비중을 같는 기업으로 남아있다. 그 예로 삼양 라면과 샤니 빵, 제일 제당 등이 있다.
이 기업들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초기 삼양라면이 나왔을 당시 주황색 포장지에 중량은 100g, 가격은 10원에 출시되었다. 회사의 기대와는 달리 `삼양라면`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했다. 오랜 기간 동안 곡식위주의 생활을 하던 우리 나라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인스턴트 밀가루 식품으로 바꾸기란 쉽지 않았고, 들어보지도 못했던 라면이 나오자 라면의 `羅綿`으로 해석하여 무슨 옷감이나 실, 플라스틱류 등의 명칭으로 오인하여 구입하여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홍보를 하여도 판매가 되지 않자 회사원이 직접 대로변에 점포를 설치하고 소비자에게 조리하는 방법을 지도하는 것에서부터 캠페인 성격의 무료 시식을 역, 극장 앞, 공원 등에서 실시했다. 처음에는 생소하여 꺼려하던 사람들도 직접 맛을 보고는 라면이라는 새로운 맛의 매력에 빠져 라면 맛의 메아리는 국민의 입과 귀를 통하여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