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Ⅰ.작품 소개
온달전에 대하여는 삼국사기 권 45 열전 제 5에 기록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온달조(溫達條)에 따르면 몹시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다 눈 먼 어머니를 봉양하였는데, 얼굴이 우습게 생겨 사람들이 그를 ‘바보 온달’이라고 하였다. 당시 고구려의 평강왕은 어린 공주가 울기를 잘하여 놀리느라고 ‘네가 울기를 잘하니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을 보내야 겠다’ 고 항상 말하였다. 공주의 나이 16세가 되어 왕이 고씨(高氏)에게로 시집보내려 하자 공주는 ‘임금은 식언(食言)할 수 없다’고 궁중을 나와 온달을 찾아 부부가 되었다.
공주는 궁중에서 가지고 나온 패물을 팔아 집과 밭을 마련하고 말을 사서 준마로 키웠다. 고구려에서는 해마다 3월 3일이 되면 왕이 신하 및 병사들과 더불어 사냥을 하였는데 온달의 말 타는 품이 언제나 남보다 앞서고 잡는 짐승도 많아서 왕이 불러 그 이름을 묻고 놀랐다. 그 때 중국 후주(後周)의 무제(武帝)가 고구려를 침공하자 온달이 선봉장이 되어 큰 공을 세우니 왕이 기뻐하여 ‘이 사람은 나의 사위다’ 하고 작위를 주어 대형(大兄)의 벼슬을 내렸다. 590년(영양왕 1) 온달은 신라에 빼앗긴 한강 이북 땅을 회복하겠다고 출정을 자원하여 신라군과 아차산성(阿且山城: 서울 광나루 북쪽 峨嵯山)에서 싸우다가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장사를 행하려 하였는데 상여가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면서 말하기를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아아 돌아갑시다!” 하였다. 드디어 들어서 장사지냈는데, 대왕이 듣고 몹시 슬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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