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그는 여러 번 도망을 시도한다. 하지만 모두 실패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시도한 도망에서 그는 감시자라고 불리는 가난한 백인들에게 발을 잘리게 된다. 이 감시자라고 불리는 백인은 아주 가난해서 백인들 사이에서도 무시를 받는다. 이 일로 쿤타는 더 이상의 도망은 무리라는 것을 알게 되고 점차 노예 생활에 적응하게 된다. 다시 한번 더 도망치게 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는 흑인노예와 백인주인들 뿐 아니라 가난한 백인들-백인 이주민들-과 자유흑인들도 가끔 등장한다. 흑인노예와 자유흑인들은 서로를 외면하는 듯이 보인다. 아마도 같은 흑인이라는 것을 느끼면서도 의식적으로 그들 서로를 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백인들은 어쩌면 부유한 백인들 보다 더 흑인노예들을 핍박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쿤타는 그가 노예선에 있을 때 그들을 학대하고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사람들이 가난한 백인 남녀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부인 중 노예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 특히 가난한 자들은 다른 이유로 노예제도를 지지한 것으로 보였다. 노예제도가 존재하는 한 백인 빈민들은 사회의 제일 밑바닥으로 가라앉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노예제도의 폐지는 인종적으로 혼합된 사회에서 제일 밑바닥으로 떨어질 가능성을 의미했다. 그러나 사실상 그러한 가난한 백인들이 흑인노예들 보다 나은 것이라곤 자유가 있다는 것, 백인이라는 것 뿐이었다. 그들은 흑인노예들 보다 가난하였으며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하였다. 조지의 가족들이 머레이 농장에서 만난 조지 존슨의 예가 그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백인들은 흑인들을 필요로 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흑인의 숫자가 백인을 능가하게 되자 그들의 결속을 방해하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단속하였다. 그들은 흑인들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종교를 이용하였다.